[블랙기업과 화이트기업] (66)경영진이 직원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직장 왕따’을 조장하는 현상도 나타나
▲ 트럼프의 유행어 ‘너는 해고다’가 인쇄된 T셔츠
◈ 해고의 어려움이 ‘직장 왕따’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잘못
대부분의 일본 성인들은 1970~90년대 학교에서 ‘왕따’현상을 경험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왕따가 직장으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노동계약법에 따라 해고가 어려워지면서 문제가 있는 직장인을 왕따 시키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반박한다
일본 노동계약법 제16조에 의하면 ‘해고는 객관적인 합리적 이유가 없거나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그 권리를 남용한 것으로 무효다’라고 명시돼 있다.
법률상 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해고를 할 수 있다.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사업부가 없어지는 것 등이 해당될 수 있다.
현재 일본 기업의 대부분은 사업이 성과가 부진한 직원을 해고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경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2016년 3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일본IBM이 성과가 부진한 직원을 해고한 것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적성을 고려해 전환배치를 하는 등의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 왕따’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운동가들은 노동계약법 제16조 인해 해고를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는 기업은 없다고 단언한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되는 일본에서 해고된 직장인이 기업을 대상으로 해고무효소송을 내는 사례는 많지 않은 점을 보더라도 노동계약법으로 인해 해고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기업은 해고 사유조차 명시하지 않고 직원을 해고한다.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경우 해고 당한 사람들은 재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따라서 ‘직장 왕따’는 학교생활에서 왕따의 효과를 경험한 직원들이 조직 내부의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직원들에게 막무가내로 조직과 상급자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요구하는 일본기업의 잘못된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버블붕괴 이후 장기간의 불황을 겪은 기업 내부에 패배감이 만연해 불만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도 ‘직장 왕따’가 사라지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 한국 기업은 IMF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특정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왕따가 유행
일본 기업에서 버블붕괴 이후 패배감에 젖은 직장인들이 희생양을 만들어 자학적 만족감을 얻은 것과 달리 한국은 IMF외환위기 이후 ‘직장 왕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종신고용이 한국기업의 장점이었는데 IMF외환위기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일회성 고용이 유행하게 됐다.
기업도 사업이 부진하면 소속 직원 전체를 해고하고 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만 선별해 퇴출한다. 성과가 좋아도 인당 매출이나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기도 한다.
한국의 직장인도 일본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해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한국의 사법시스템이 ‘돈’과 강자에 약하기 때문이다. 즉 소송을 제기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거나 이길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어찌되었건 경영진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을 구분해 관리하는데 후자의 직원이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소위 말하는 이너써클에 포함된 직원들은 자신들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타겟으로 삼은 직원을 왕따로 만든다.
양쪽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은 직원들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올 것을 두려워해 왕따로 지목된 직원과 거리를 두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왕따 현상은 심화되는 것이다.
직장 왕따에 대한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고 피해 직원이 소송을 제기하기 보다는 퇴사를 선택해 떠난다는 점도 왕따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일부 기업에서는 경영진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 파벌이 왕따 현상을 주도하기도 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기업에서 혁신이 사라지고 파벌문화만 형성된 것도 왕따와 같은 잘못된 관행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 계속 -
김백건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윤리경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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